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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진영

"피째 먹지 말라"

노아 언약의 특징 중 하나로 아담 언약에 포함되지 않았던 육식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이 없으니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의 어떠한 변화에 기인한 것이리라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시대에 홍수 심판을 결정하신 이유로 인간의 포악함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폭력이 인간들 사이에 그리고 동물들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짐승을 죽여 그 고기를 먹는 행위는 아마 노아 홍수 이전에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 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 9:3-5

 

어쩌면 타락 이후에 육식은 인간의 생존 자체에 불가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아 언약에 분명히 명기된 그 짐승을 "피째 먹지 말라"는 말씀은 타락 이후 노아의 시대까지 인간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식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했는지를 보여주는, 그 폭력성을 다시는 일삼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락 이후로 인간의 생존을 위해 육식 자체가 불가피하게 되었지만 고기를 음식으로 주었다는 것이 곧 그 짐승의 생명까지도 주었다는 것이 아님을, 주님께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을 존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천명하신 일 이다. 즉 노아 언약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인류에 대한 축복일 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다. 생태계의 생명과 가치를 함부로 여기는 이들의 폭력성을 이후 절대 좌시하지 않으시겠다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변호인 것이다.

"동물도 구원을 받느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콧방귀를 뀐다. 사실 이 질문에 어떤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울에 의하면 타락한 이 세상도 분명 하나님의 구속의 손길과 구속된 새로운 인류의 부흥을 고대해 왔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구원의 여부를 묻는 논쟁은 신학적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지나간 세월 동안 인류가 보여온 포악함은 노아 홍수 이전의 인류의 포악함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애통해야 할 충분한 반성의 지점을 일러준다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니느웨 성이 하나님께서 퍼붓는 유황불에 타 없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요나의 포악한 마음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11

 

우리들의 전통적인 신학의 틀이 인간의 포악함에 어떤 방식의 면제부를 주어왔는지 이제 차근 차근 따져물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너무 때가 늦은 것은 아닐까?